전기차 주행거리는 배터리 크기로만 결정될까? 폭스바겐 1,278km 실험이 보여준 것

 

전기차 주행거리는 배터리 크기로만 결정될까? 폭스바겐 1,278km 실험이 보여준 것.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숫자는 배터리 용량이다. 배터리가 크면 저장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가 많으니 더 멀리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배터리를 계속 크게 만드는 것만이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법일까?

최근 폭스바겐이 공개한 기술 실증용 전기차 프로토타입 ‘미션 이피션시(Mission Efficiency)’는 이 질문을 흥미롭게 만든다. 공개된 주행 결과에 따르면 이 차량은 54.9kWh 배터리를 사용해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약 1,278km를 한 번의 충전으로 주행했다.

숫자만 보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전기차’라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번 기록을 일반 양산 전기차의 공식 주행거리와 동일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1,278km라는 숫자 자체보다 어떻게 에너지 손실을 줄였느냐에 있다.


54.9kWh 배터리로 1,278km,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션 이피션시에 탑재된 배터리 용량은 54.9kWh로 알려졌다. 최근 장거리 주행을 강조하는 일부 전기차가 훨씬 큰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다.

폭스바겐이 공개한 자료에서 평균 전력 소비량은 충전 손실을 제외하고 100km당 6.89kWh 수준이었다. 최적 조건에서는 6.48kWh/100km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전기차의 효율을 이해할 때는 흔히 말하는 ‘전비’를 생각하면 쉽다. 같은 양의 전기에너지로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다면 배터리를 키우지 않아도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미션 이피션시의 접근법도 여기에 가깝다.

더 많은 에너지를 싣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쓰는 것.

그래서 이 차량에서는 강력한 출력이나 화려한 편의장비보다 공기저항, 타이어의 구름저항, 차량 무게, 회생제동 등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여러 통로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전기차에서 공기저항이 중요한 이유

자동차가 앞으로 달릴 때는 공기를 밀어내야 한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기저항에 필요한 에너지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고속주행에서는 공기역학 설계가 효율에 특히 중요해진다.

미션 이피션시가 기록한 공기저항계수(Cd)는 0.158이다.

단순히 Cd 숫자 하나만 낮춘 것도 아니다. 차량 전면의 크기와 형태도 공기저항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면 투영면적을 줄이고, 공기가 차체를 가능한 한 매끄럽게 지나가도록 여러 장치를 적용했다.

필요에 따라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액티브 냉각 플랩, 뒷바퀴를 덮는 커버, 평평하게 정리한 차체 하부, 매립형 도어 핸들 등이 대표적이다.

평소 자동차 디자인을 볼 때는 이런 부분이 단순히 ‘미래적인 외관’을 만들기 위한 장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기차에서는 작은 공기저항의 차이가 결국 배터리에서 꺼내 쓰는 에너지의 차이로 이어진다.

폭스바겐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시속 80km 이상의 조건에서는 일반적인 ID. 폴로와 비교해 전력 소비량이 30% 이상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 대목은 전기차에서 고속도로 주행거리가 도심보다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도심의 감속 과정에서 회생제동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고속에서는 공기저항을 계속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어와 브레이크도 주행거리를 바꾼다

공기만 줄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자동차가 달릴 때 타이어는 노면과 접촉하면서 변형되고 복원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를 구름저항(Rolling Resistance)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

미션 이피션시에는 콘티넨탈과 공동 개발한 에코콘택트 7 타이어가 적용됐다. 휠 안쪽에는 공기의 불필요한 유입을 줄이기 위한 림 디플렉터도 사용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효율 기술이 소비자가 흔히 생각하는 ‘전기차 기술’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배터리나 전기모터처럼 눈에 띄는 핵심 부품뿐 아니라 타이어가 얼마나 쉽게 굴러가는지, 휠 주변의 공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실제 소비전력에 영향을 미친다.

브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전기차는 감속할 때 모터를 이용해 운동에너지의 일부를 다시 전기에너지로 회수하는 회생제동을 사용한다. 미션 이피션시는 뒤쪽 브레이크에도 마찰 손실을 줄이고 회생제동 활용을 높이기 위한 전자기계식 시스템을 적용했다.

결국 긴 주행거리는 거대한 기술 하나보다 여러 곳에서 조금씩 발생하는 손실을 찾아 줄인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태양광까지 달았지만 1,278km의 핵심은 따로 있다

차량 지붕과 트렁크에는 370W급 태양광 발전 시스템도 적용됐다.

폭스바겐은 조건에 따라 하루 최대 약 30km를 주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태양광 발전량은 일조량과 날씨, 주차 환경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수치를 모든 상황에서 확보되는 추가 주행거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번 차량에서 눈여겨볼 것은 ‘전기를 더 만드는 방법’보다 ‘전기를 덜 쓰는 방법’이다.

실내에서도 이런 철학이 드러난다. 별도의 차량용 스피커 대신 이동식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하고, 대형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활용하는 식으로 무게와 전력 소비를 줄였다.

물론 이런 구성은 기술 실증차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다. 실제 양산차에서는 안전 규정과 내구성, 소음, 편의성, 냉난방, 다양한 주행환경 등 훨씬 많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278km를 양산 전기차의 주행거리로 보면 안 되는 이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미션 이피션시가 한 번의 충전으로 약 1,278km를 달렸다고 해서 54.9kWh 배터리를 넣은 일반 전기차가 앞으로 모두 1,200km 이상 달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차량은 효율의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이고 실제 주행 결과 역시 특정 경로와 조건에서 나온 기록이다.

공식 인증 주행거리는 정해진 시험 절차에 따라 측정된다. 반면 실제 운전에서는 속도, 외부 온도, 바람, 고저차, 교통상황, 냉난방 사용, 승객과 짐의 무게, 타이어 상태 등에 따라 전력 소비량이 달라진다.

따라서 ‘서울~부산 왕복 가능’ 같은 표현은 거리 자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비유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 소비자가 같은 조건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주행거리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번 실험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지금까지 전기차의 긴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더 많은 배터리를 싣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터리가 커지면 차량 무게와 비용 역시 증가할 수 있다.

폭스바겐의 이번 프로젝트는 반대쪽 질문을 던진다.

“배터리를 더 넣기 전에 자동차가 낭비하는 에너지부터 줄이면 어떨까?”

공기저항을 낮추고, 타이어의 손실을 줄이고, 무게를 덜어내고, 회생제동을 적극 활용하면 같은 배터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주행거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경쟁의 다음 숫자는 배터리 용량만이 아닐 수 있다

전기차를 볼 때 우리는 흔히 배터리가 몇 kWh인지, 완충하면 몇 km를 달리는지부터 확인한다.

하지만 미션 이피션시 사례를 보면 앞으로는 ‘얼마나 큰 배터리를 넣었는가’만큼 ‘100km를 가는 데 얼마나 적은 전기를 사용하는가’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더 큰 배터리로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법과 차량 자체의 효율을 높여 같은 에너지로 더 멀리 가는 방법은 서로 다른 접근이다. 실제 양산 전기차에서는 두 기술이 적절하게 결합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약 1,278km라는 기록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뒤에 숨어 있는 Cd 0.158의 공기역학, 낮은 구름저항, 경량화와 에너지 회수 기술이다.

전기차의 미래가 단순한 ‘대용량 배터리 경쟁’에서 ‘에너지 효율 경쟁’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FAQ:

Q. 폭스바겐 미션 이피션시는 실제 판매되는 전기차인가요?
아닙니다. 미션 이피션시는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을 시험하기 위한 기술 실증용 프로토타입! 입니다. 따라서 이번 주행 결과를 일반 양산차의 공식 인증 주행거리와 동일하게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Q. 배터리가 작은데도 전기차가 멀리 갈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배터리 용량뿐 아니라 차량의 공기저항, 무게, 타이어 구름저항, 구동계 효율, 주행속도와 외부 환경 등이 전력 소비량에 영향을 줍니다. 같은 배터리 용량이라도 효율에 따라 실제 주행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공기저항계수 Cd가 낮으면 무조건 전비가 좋아지나요?
낮은 Cd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유리하지만 그것만으로 전비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차량의 전면 투영면적, 무게, 타이어, 구동계 효율과 주행조건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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